[李대통령 시정연설]
3년만에 반쪽 시정연설… 李 "허전하군요"
3년만에 반쪽 시정연설… 李 "허전하군요"
 |
|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모두 불참해 자리가 비어 있다. /송의주 기자 |
4일 오전 9시 40분 국회 본청 앞. 이재명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청사에 들어서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고성을 쏟아내며 거세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특검 수사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며 이날 시정연설을 전면 보이콧했다. 지난 2022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 시정연설 때 더불어민주당이 불참했던 장면이 3년 만에 여야만 뒤바뀐 채 재현된 것이다.
이날 국회 본청 로텐더홀 중앙계단에는 국민의힘 의원 100여 명이 검은 마스크를 쓰고 이 대통령을 향한 '침묵시위'를 벌였다. 의원들 손에는 '명비어천가' '야당파괴' '근조 자유민주주의' '불법 특검' 등 피켓이 들렸고, 뒤편에는 "야당탄압 STOP, 정치보복 OUT"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이 대통령 입장이 임박한 9시 35분께 침묵시위는 '육성시위'로 전환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정문 앞으로 내려오자 "우원식 정신 차리라", "쪽팔리지도 않나" 같은 고성이 터졌고, 곧이어 이 대통령이 본관으로 진입하자 "범죄자가 왔다", "재판 속개해라", "꺼져라" 등의 야유가 쏟아졌다. 경호 인력과 여야 의원들이 뒤엉키며 로텐더홀 일대가 소란스러워지는 장면도 연출됐다.
이 대통령은 중앙계단 대신 왼쪽 진입로로 이동해 사전환담장으로 향했다. 환담장에는 우 의장과 김민석 국무총리,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 김용범 정책실장 등이 자리했다. 국회 인사로는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참석했고, 조희대 대법원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본회의장 안은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오전 9시 36분, 이주희 민주당 의원이 가장 먼저 자리에 앉았고, 김준혁·박선원 의원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서서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도 포착됐다. 정 대표와 박찬대 의원은 서로 넥타이를 고쳐주며 입장을 준비했다.
개혁신당에선 천하람 원내대표만 홀로 입장했다. 같은 당 소속 다른 의원들은 보이지 않았고, 천 원내대표는 박수에도 동참하지 않은 채 연설을 조용히 지켜봤다. 오전 10시 6분 본회의장 문이 열리자 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해 대통령을 환대했다. 이 대통령이 가운데 통로를 따라 걸으며 정청래 대표가 있는 좌측부터 악수를 건넸고, 본회의장 내 박수 소리는 2분 넘게 이어졌다. 국민의힘·개혁신당 의석 100여 석은 텅 비어 있어 대비됐다.
단상에 오른 이 대통령은 야당 측 의석을 바라보며 "좀 허전하군요"라며 시정연설을 시작했다. 연설은 약 21분50초 진행됐고, 입장 박수를 포함해 총 33차례 박수가 나왔다. 인공지능(AI)·외교·안보 등 주요 예산안 부문에서 박수가 나왔고, 일부 여당 의원들은 몸을 숙이며 박수를 칠 정도로 호응했다.
연설이 끝난 뒤 본회의장에서는 약 4분간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회의장 벽면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여당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정청래 대표는 환하게 웃었고, 김병기 원내대표는 무표정한 표정을 유지했다. 김병주 의원은 대통령의 동선을 휴대전화로 촬영했고, 서미화 의원은 대통령의 손을 잡고 짧게 뛰며 환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