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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워싱턴포스트의 위기가 말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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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3. 02. 17:04

기자 대량 해고 兩强에서 생존 위기로
소유주 베이조스의 트럼프 아부 노골화
美 정치시스템 부패와 퇴락의 한 상징
우리 언론과 民主政 환경은 안녕한가
배병우 논설위원
배병우 논설위원
10여 년 전만 해도 미국을 대표하는 미디어는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였다. 독자 수, 퓰리츠상 수상 횟수, 사회적 영향력에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진정으로 양강(兩强) 구도였다. 2026년 현재, 타임스의 위상은 여전하거나 더 높아진 반면 포스트는 추락했다. 고급지든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든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이 범주의 양강 지위에서 포스트는 탈락했다.

포스트의 추락은 단순한 부진이 아니다. 생존의 위기다. 지난달 포스트 경영진은 뉴스룸 기자 800명 중 300여 명을 해고했다. 해고 이유는 짐작하듯이 너무 오랫동안 큰 규모의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메트로면과 스포츠·북섹션이 폐지되고 신문의 최강점 중 하나였던 국제 부문도 거의 해체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하던 특파원도 현장에서 해고 통지를 받았다.

워싱턴포스트의 경영 사정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2024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1억 달러(약 1440억원)의 적자를 냈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2013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인수한 뒤 7~8년간은 성공적이었다. 디지털 구독자와 수익이 크게 늘었다. 당시 편집국장 마틴 배런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배런은 2003년 당시 보스턴글로브 편집국장으로 가톨릭교회의 아동 성추행 논란을 파헤친 '명장'이다. 보스턴글로브는 이 취재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사건을 영화화한 게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다. 2021년 배런 퇴직 후 윌 루이스 발행인의 방향 잃은 리더십이 패인으로 자주 거론된다. 포스트의 전통적 강점인 발군의 취재인력과 강력한 저널리즘 대신 '기술 만능주의'에 빠진 경영전략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소유주 베이조스의 '변심'이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1기에는 트럼프의 끊임없는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다. 편집에도 간섭하지 않았다. 진실의 순간은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하기 직전인 2024년 10월에 왔다. 포스트의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 사설을 베이조스가 막은 것이다. 독자들은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자신의 상업적 이익에 눈먼 신문사 소유주에 의한 편집권 독립의 상실. 이를 항의하며 25만 여명이 포스트 구독을 끊었다. 트럼프 당선 후 베이조스는 오피니언 면을 더 약화시켰다. 트럼프에 대한 아부는 강도를 더했다.

베이조스 소유 기업 아마존은 트럼프 부인 멜라니아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며 그녀에게 출연료 명목으로 400여 억원을 지불했다. 트럼프 일가에 대한 미국 기업가들의 아부경쟁 에서도 정점을 찍는 것이었다. 멜라니아 다큐가 개봉된 지 닷새 뒤 포스트 기자 '대학살'이 벌어진 것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베이조스가 아마존과 우주탐사 기업 블루 오리진에 미칠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런 행위를 하고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50년 역사를 가진, 미국 저널리즘의 보석이 이렇게 급속히 추락하는 건 비극이다. 한 언론기업의 비극으로 그치지 않는다. 포스트의 추락이 드러낸 것은 미국 시스템의 부패와 타락이다. 한때 세계의 모범이었던 미국 민주주의의 황량한 현실이다.

2000년 이후 약 3500개의 신문사가 문을 닫으면서 미국인 4명 중 1명은 지역 신문이 없는 '뉴스 사막'에 살고 있다. 트럼프는 진실을 추구하는 주류 언론에 대한 적대감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공영 방송사 NPR과 PBS의 연방 자금 지원을 10억 달러 이상 삭감했으며, 자신의 부패와 거짓을 폭로한 개별 기자와 언론사에 전면 공격을 가하고 있다.

남의 나라 일로만 여길 게 아니다. 한국도 '가짜뉴스' 유포 책임을 물어 언론에 손해액의 5배까지 징벌적 배상을 가능케 한 일명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의 시행을 앞두고 있다. 내홍에 몰두한 시대착오적 야당과 시민들의 무관심을 틈타 민주 제도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위헌성 뚜렷한 사법개편 법안들이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 배런 전 편집국장 시절에 만들어진 워싱턴포스트의 1면 슬로건이다. 언론의 권력 감시가 없는 곳에서 민주주의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 울림이 크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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