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기자의눈] 가격은 내리고 원가는 오른다…식품업계의 역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4.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322010006305

글자크기

닫기

이창연 기자

승인 : 2026. 03. 22. 17:21

이창연
시장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곳이 있다. 최근의 대한민국 식품업계다. 밀가루, 설탕 등 글로벌 원부자재 가격은 변동성이 커지고, 인건비와 물류비는 상승 흐름이 이어진 지 오래다. 여기에 고환율 장기화로 수입 단가 부담까지 빠르게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내놓는 최종 소비재 가격은 오히려 내려가고 있다. 앞다퉈 가격 인하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겉으로는 '업계의 자발적 동참'과 '상생'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지만, 현장에서 기업들이 느끼는 압박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연일 이어지는 물가 점검 회의와 현장 방문 속에서 기업들은 사실상 선택의 폭이 제한된 상황에 놓여 있다.

원재료 가격이 일부 하락한 것은 사실이다. 설탕·밀가루·전분당 담합 조사 이후 제당·제분 업체들이 4~6% 인하를 단행하면서 가격 인하 흐름이 시작됐다. 하지만 식품 제조사의 전체 원가에서 밀가루가 차지하는 비중은 라면 기준 10~20%, 과자는 10% 미만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인건비, 물류비, 포장재와 에너지 비용 등이 대부분이다. 중동 리스크로 국제 유가는 다시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원가는 오르는데 가격은 내려야 하는 구조적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식품업계의 대응을 두고 일각에서는 '맹탕 인하'나 '생색내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가 높거나 매출 비중이 큰 주력 제품은 제외하고,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은 제품만 가격을 낮췄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단순하지 않다. 국내 식품 제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5% 수준으로, 타 산업에 비해 마진 구조가 매우 얇다. 원가 상승 압박을 고스란히 떠안은 상황에서 핵심 제품 가격까지 낮추는 것은 수익성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식회사 체제에서 경영진이 이를 감수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비주류 제품 인하는 극한의 압박 속에서 기업이 선택한 최소한의 방어 전략에 가깝다.

그럼에도 현재 상황은 식품업계에 부담이 집중되는 양상이다.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인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나 거시경제 변수는 뒤로한 채, 소비자와 가장 밀접한 업종이라는 이유로 정책 부담이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근본 처방보다는 단기 대응에 가까운 접근으로 볼 수 있다.

가격을 억누르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누적된 원가 압박은 투자 위축과 품질 저하, 나아가 고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가격은 시장 기능에 맡기고, 정부는 할당관세 확대나 비축물량 방출 등 수입 물가 부담을 낮추는 정책에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

K푸드의 글로벌 위상을 강조하면서, 정작 국내에서는 가격 통제의 대상으로만 접근하는 현재의 정책 방향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일방적인 부담을 요구하기보다 보다 균형 잡힌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창연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