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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의 중국 정치·산업 四季] 진화하는 중국 3.15 완후이… ‘위기의 시험대’에서 ‘품질 마케팅’ 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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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3. 25. 16:35

김동영 중국경영연구소 부소장·동국대 겸임교수
매년 3월 15일은 국제소비자기구(CI)가 지정한 '세계 소비자의 날'이다. 전 세계가 소비자의 권익을 되새기는 날이지만, 유독 중국 산업계와 시장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인다. 1991년부터 중국 중앙방송(CCTV)이 매년 이날 저녁 생방송으로 진행해 온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3.15 완후이(晩會)' 때문이다. 이 방송은 단순히 불량 제품이나 서비스의 문제를 폭로하는 차원을 넘어, 중국 정부의 당해 연도 산업 규제 방향을 암시하고 시장의 기강을 잡는 강력한 국가적 상징성을 지닌다. 방송에 이름이 오르내린 기업은 즉각적인 주가 폭락이나 대대적인 불매 운동, 당국의 고강도 조사에 직면하기도 한다. 따라서 중국 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에게 3.15는 매년 반드시 예의주시하고 대비해야 할 중요한 연례 행사로 자리 잡아왔다.

필자가 LG전자 중국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회사는 이 시기가 다가오면 연중 매우 높은 수위의 위기관리 체제를 가동했다. 3.15 고발 리스트에 오르는 불상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3월 초가 되면 전국의 서비스 센터를 총동원해 대대적인 '찾아가는 무상 점검(Before Service)' 캠페인을 전개했다. 선제적으로 고객의 불만을 챙기고 핵심 부품의 보증 기간을 연장하는 등,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억지로라도 언론에 내비치는 것이 당시 우리를 비롯한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취하던 고도의 방어적 PR 전략이었다. 이후 중국 로컬 기업들의 추격이 거세지자, 외국계 기업들은 수세적인 방어에서 한발 나아가 권위 있는 글로벌 어워드 수상 실적이나 국제 품질 인증을 3.15 기간에 전면에 내세우며, 스스로가 '흠결 없는 프리미엄 브랜드'임을 당당히 증명하는 방식으로 대응 트렌드를 진화시켜 나갔다.

그런데 2026년 현재, 중국의 3.15 트렌드는 우리가 겪었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거시적 차원의 패러다임 전환을 맞이했다. 과거의 3.15가 공장형 제조업체들의 조립 불량이나 AS 차별을 잡아내는 '현미경'이었다면, 지금은 '소비공평(消費公平)'이라는 철학 아래 신산업의 회색지대를 조명하는 거대한 '투시경'으로 변모했다. 올해 방송에서 폭로된 핵심 고발 대상, 이른바 '7대 난상(七大亂象)'을 살펴보면 이러한 당국의 규제 철학 변화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수십 년의 품질 경영으로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낮춘 주류 가전 대기업들은 고발 대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인공지능(AI) 대형 언어 모델에 악의적인 허위 데이터를 고의로 주입하는 '투독(投毒)' 생태계, 무허가 엑소좀 성분을 남용하는 의료·바이오 사기, 폐쇄형 단톡방을 악용해 노인들을 세뇌시키고 폭리를 취하는 빅데이터 사기 등 기술의 진보가 낳은 기형적인 그림자 영역이 집중 타격을 받았다.

규제의 칼날이 신산업의 첨단 비윤리적 비즈니스 모델로 향하자, 무결점의 품질 인프라를 갖춘 현지 주류 대기업들은 더 이상 3.15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들은 납작 엎드리던 과거의 수세적 태도를 버리고, 오히려 이 기간을 연중 최대 규모의 판촉을 전개하는 '품질 마케팅 축제'로 역이용하고 있다. 중국 가전 대기업 캉자(康佳) 그룹이 선보인 '흑백 마케팅 융합'이 가장 혁신적인 성공 사례다. 캉자는 3.15 시즌에 맞춰 시청각 중심의 흑색 가전(TV)과 가사 노동 중심의 백색 가전(냉장고, 세탁기) 부서의 칸막이를 허물고, 이들을 하나의 스마트홈 세트로 묶어 판매했다. 놀라운 것은 전사적 차원에서 분절되어 있던 물류망을 하나로 단일화하여 TV와 세탁기를 동시에 배송하고 설치하는 고객 경험의 혁신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막대한 물동량을 바탕으로 물류 파트너를 압박해 서비스 품질을 끌어올린 이 전략은, 제품과 시스템에 대한 강한 자부심 없이는 불가능한 파괴적 정면 돌파다.

중국 시장의 룰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숨죽이던 3.15는 이제 제품의 윤리적 무결성과 시스템의 효율성을 당당히 증명하는 거대한 상업적 무대가 되었다. 향후 거대한 중국 내수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 역시, 막연한 긴장감으로 방어에 치중했던 과거의 위기관리 매뉴얼을 과감히 진화시켜야 한다. 고도화된 중국 규제 당국의 깐깐한 잣대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사용자의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선한 기술(科技向善)'과 혁신적인 고객 경험을 전면에 내세우는 창조적이고 공격적인 3.15 역발상 마케팅 전략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김동영 중국경영연구소 부소장·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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