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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2026년 이란-이스라엘 전쟁은 이러한 고전적 통찰을 넘어 더욱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1973년의 4차 중동전쟁이 단순한 원유 공급 차단에 의한 유가 급등이었다면, 이번 전쟁은 복합적 시스템 붕괴의 성격을 갖는다. 전 세계 석유의 20%뿐만 아니라 LNG의 25%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유가가 배럴당 130~150달러까지 치솟는 등 전 세계 에너지 비용이 폭등했다. 오만과 UAE 등 주요 항구의 물류가 마비되어 자동차와 가전 등에 들어가는 중간재 공급망이 끊겨 '비용 인상' 압력이 강해지고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앞으로 미국이나 여타 국가들의 중앙은행과 정부가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예상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브렌단 브라운(Brendan Brown)의 분석이다. 그는 전쟁 초기에는 물가상승 부담으로 정책 금리가 오히려 오르고 단기적인 '통화적 디플레이션(monetary disinflation)'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전쟁 초기 3주 동안 2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급등한 것은 이러한 시장의 긴축적 반응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적인 물가 안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전쟁이 마무리되고 에너지 공급 충격이 완화되면서 물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하면, 연준(Fed)이나 여타 중앙은행들이 이를 기회 삼아 다시 통화 팽창의 엔진을 가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마도 연준은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에 근접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과거의 과잉 유동성을 회수하지 않은 채 다시 돈을 풀 것이며, 결국 전쟁은 대중의 눈을 피해 인플레이션 정책을 지속할 수 있는 완벽한 '위장막'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게 브라운의 예상 시나리오다.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을 언제나 '화폐적 현상'으로 정의했다. 그는 전쟁 자체가 아니라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통화량 증대가 물가를 올린다고 봤다. 통화량을 늘리지 않는 상태에서는 돈이 전쟁 물자 생산에 쏠리게 되면, 다른 생산에 대한 수요는 필연적으로 그만큼 줄어들고 가격 상승의 압박도 줄어든다. 따라서 모든 재화와 서비스들의 평균적인 가격을 의미하는 물가가 급등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전쟁 수행을 위해 명시적인 세금 인상보다는 대중이 인지하기 어려운 '인플레이션 조세'를 선호한다고 지적한다.
이번 중동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는 등 우리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전쟁 당사국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최근 25조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확정하면서, 국채 발행 없이 오직 '초과 세수'만을 활용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추경이 초과 세수라는 신기루에 기대어 지출을 늘림으로써 국민에게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아닌지 경제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예컨대 우석진 교수는 아직 걷히지도 않은 '가공의 숫자'인 초과 세수를 미리 당겨쓰겠다는 논리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비정상적인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대규모 세수 추계 실패를 반복해 온 재정경제부가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의 행정을 펼친다면, 만약 세수가 예상만큼 걷히지 않을 경우 나중에 더 큰 경제적 타격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아마도 미 연준(Fed)을 비롯한 중앙은행들의 행동을 지켜본 학자들의 관찰이 정확하다면,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중동전쟁과 그에 따른 글로벌 물가 상승은 단순히 기다리면 지나갈 소나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전 세계 경제의 비용 구조 자체가 한 단계 상승하는 '구조적 고물가'의 서막일 수 있다. 따라서 어느 나라의 정부가 전쟁의 포화 너머에 도사린 더 큰 인플레이션 혹은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적 파국으로부터 국민을 잘 보호하느냐가 향후 각국의 장기적 경제 성적을 가늠할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 정부는 중동전쟁 이후까지 멀리 내다보고 엄격한 재정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 예산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그리고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세수를 이유로 대규모 재정을 쏟아붓는 것은 자칫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인플레이션의 관성을 강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김이석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