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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수'의 탄생 뒤에는 이경숙 관장의 30여 년에 걸친 헌신이 있다. 동양화 전공에 조형학 박사인 그는 고미술품을 탐구하던 중, 손바닥만 한 '베갯모 자수'에서 거대한 우주를 보았다. 가족의 안녕과 부귀영화를 기원하며 수놓은 작은 문양들이 그에게는 세상 어느 명화보다 강렬한 울림을 주었다. 이 관장은 전국의 고미술 시장을 발로 뛰며 뿔뿔이 흩어져 있던 우리 전통 자수와 보자기, 민속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유물을 수집하는 행위는 단순히 오래된 골동품을 창고에 쌓아두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바늘 끝으로 무명천 위에 화려한 꽃을 피워낸 이름 없는 옛 여인들의 애틋한 마음을 읽어내는 데 집중했다. "자수는 한 땀마다 정성을 들이는 기도와 같다"는 그의 신념은 2010년 박물관 건립의 동력이 되었고, 지금까지 이곳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박물관이 소장한 1500여 점의 유물은 미학적으로 독보적이다. 자수(刺繡)라는 단어가 바늘로 찔러 무늬를 만드는 '행위'에 집중한다면, 수(繡)는 그 인고의 과정 끝에 얻어진 '화려한 무늬' 그 자체를 예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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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장은 두 장르를 융합하여 잃어버린 전통의 원형을 회복하려 애쓰고 있다. '전통문화는 미래의 뿌리'라는 평소 생각처럼, 민화와 자수의 결합은 시대를 초월한 현대성으로 세계 미술 시장에서 손색없는 'K-Art'의 원형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박물관 '수'의 특별함은 유물을 과거에 가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관장은 박물관이 지역 공동체의 상처를 치유하는 살아있는 거점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치매 어르신들을 위한 바느질 강좌 '기억을 잇는 한 땀'이다. 그는 자수가 지닌 본연의 치유 효과, 즉 '아트 테라피'에 주목했다. 어르신들에게 바늘과 실은 젊은 날의 일상이자 가정을 지탱하던 생업의 도구였다.
익숙한 도구를 다시 만지는 행위는 긍정적인 기억을 소환하는 '회상 요법'이 되며, 정교한 손놀림은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춘다. 떨리는 손으로 수를 놓아 완성된 작품을 마주할 때 느끼는 환희는 자수가 가진 인문학적 깊이를 증명한다. 바늘 끝에서 피어나는 꽃은 서두른다고 피지 않는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곧 치유의 시간임을 박물관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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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열악한 사립 박물관 환경에서도 예비 학예사들을 위한 전문 교육을 꾸준히 진행하며 미래의 문화 파수꾼들을 길러내는 일에도 매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수의 미학을 일상으로 전파하기 위해 굿즈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민화 마그넷, 향수, '한 땀의 명상'을 제안하는 DIY 키트 등은 유물을 박물관 유리 벽 너머에서 구출해 우리 삶 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바람직한 시도다.
이제 우리는 박물관 '수'가 주도하는 'K-바느질'의 세계화에 주목해야 한다. 'K-컬처'가 세계를 매료시키는 지금, 진정으로 내세워야 할 가치는 '디테일'과 '인내'다. 수만 번의 바느질로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시간의 퇴적 예술'은 현대인의 파편화된 마음을 꿰매는 강력한 치유 콘텐츠가 될 수 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의 전통 기법에서 영감을 얻듯, 'K-바느질'은 이제 단순한 수공예를 넘어 세계적인 디자인의 원천이 되는 '침선(針線)의 인문학'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경숙 관장이 보여주려는 것은 결국 '바느질은 팍팍한 삶을 깁는 거룩한 행위'라는 사실이다. 흩어진 조각보를 모으듯 전국을 누빈 그의 집념 위로, 가족의 평안을 빌던 우리 어머니들의 기도가 이제야 겹쳐 보인다.
박물관 '수'는 작고 아담하지만, 어느 대형 박물관보다 그 울림은 깊고 단단하다. 일상의 속도에 지친 이들은 이곳에서 바느질의 느린 호흡을 느끼며 잃어버린 마음의 조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늘 끝에서 피어난 정성스러운 꽃 한 송이가 고단한 하루를 다정하게 어루만져 주는 이 보석 같은 공간이 'K-Art'의 심장으로 뻗어 나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누구든 문을 여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위로의 실타래를 여기에서 쥐게 될 것이다.
/김정학 前 대구교육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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