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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어떻게 이래” 화마 지난 구룡마을에 새겨진 상처…“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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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은 기자

승인 : 2026. 10. 2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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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집기·집터에 전소된 차량…황량한 구룡마을 화재 현장
터전 잃고 울분 토하는 주민들…“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
당국에 문제제기도…“한참만에 소방차 와, 제때 불만 껐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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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 현장에 불탄 집기들이 나동그라져 있다. /이하은 기자
"아무것도 못 건졌어요. 남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는 죽기살기로 버틸 뿐이에요."

28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만난 60대 정씨는 전날 화재로 보금자리를 잃고 힘없이 주저앉아 하소연했다.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마을과 주민들에게 물질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특히 화재 다음날인 이날 전국적인 한파까지 겹치며 주거지를 잃은 주민들이 곤경에 처했다. 소방 당국은 이번 화재로 주민 91가구 127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가건물 약 99가구와 약 2만8000㎡에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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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 현장에 합동감식을 위한 경찰 차량이 주차돼 있다. /이하은 기자
찬바람이 부는 이날 아침, 구룡마을에는 화재를 수습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관들과 소방관들, 취재를 나온 기자들이 몰리며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이날 마을 초입까지 통제선을 치고 합동감식을 진행했다.

11시 30분께 합동감식이 종료되고 들어선 화재 현장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불탄 주택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가운데 사방에 불탄 집기가 나동그라져 있고, 그을린 담벼락은 전날 화재의 위력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일부 시설물들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고, 전소된 차량들의 외형도 곳곳에서 보였다.

일부 주택에서는 뼈대와 나무 판자, 떡솜이 외부로 드러난 채 이때까지도 약간의 연기가 나고 있었다. 현장에는 매캐한 연기 냄새와 함께 불탄 생활용품과 쓰레기들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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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로 불탄 주택이 28일 뼈대와 판자, 떡솜 등이 드러난 채 연기를 내뿜고 있다. /이하은 기자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구룡마을에서는 지난 1월에도 대형 화재가 발생한 바 있는데, 당시 165가구 258명이 대피했다. 그런데 9개월 여 만에 또다시 큰불이 난 것이다. 반복된 악재로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좌절감을 감추지 못했고, 마을에는 전날 화재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채 분노와 불신이 상흔처럼 남겨져 있었다.

마을 자체적으로 운영 중인 급식소에서 만난 박정자(58)씨는 외지로 놀러 나갔다가 화재 소식을 듣고 놀란 마음에 바로 마을로 달려왔지만 모든 것을 다 잃었다며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오는 내내 아무 생각도 안 났고,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지금 입은 옷 한 벌 외엔 아무것도 못 건졌다"며 "밥을 먹다가도 몇 번씩 생각에 잠긴다. 내가 당사자가 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정이다"라고 했다.

함께 자리에 있던 백모씨(69)는 항암 치료를 하며 먹던 약이 불타 버렸다며 곤란한 상황을 전했다. 백씨가 다니던 병원도 휴가라서 당분간 진료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고, 겨우 다른 병원에 진료 예약을 잡아 약을 타 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제 아무것도 없다. 가만히 있다가도 한 번씩 울컥하는 마음이 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설움이 올라온다"고 했다. 정씨 역시 "생필품도, 먹던 약도 아무것도 못 건졌다. 겨울 옷이라도 가져오겠다고 하는데도 소방관들이 양팔을 잡고 못 가게 막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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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 현장에 불탄 집터가 남아 있다. /이하은 기자
주민들은 당국의 대응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정씨는 "불이 난 지 한참 만에 소방차가 와서는 물이 없다고 서 있기만 하더라. 그때 빨리 나서기만 했어도 몇 집은 무사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연되면서 불이 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집들까지 다 타버렸다"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동네를 없애려고 작정한 게 아니면 어떻게 이러냐"고 소리쳤다. 백씨도 "3시대에 불이 나서 4시가 좀 넘은 시점에 구급차가 출동했는데, 소방차는 한참 늦게 왔다. 와서도 물이 없다며 한참 시간을 허비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주민들은 진화가 지연된 것을 두고 강한 의구심을 내보이기도 했다. 백씨는 이번 화재가 사람이 살지 않던 집에서 갑자기 났다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불이 다 꺼지기도 전에 소방차가 뒤로 빠지는 것도 봤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며 "1년에 두 번이나 큰불이 난 것도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또 "우리 집이 불이 난 곳에서 3차선 도로 거리만큼 떨어진 곳이어서 걱정을 안 했다. 처음에는 근처에도 불이 안 왔는데, 한참 동안 불이 번지니 결국 우리 집도 다 타버렸다"고 말했다.

이날 마을에서 만난 70대 남성은 "바람이 많이 분 날이어서 불이 더 커졌다"며 "쫓아내려고 작정을 했는데 타이밍을 잘 잡은 것"이라고 했다. 정씨도 "한 번 싸워 보자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집을 다 태워 버리고, 이제는 죽기살기로 버티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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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강남구 개포중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구룡마을 화재 이재민 대피소 현장에 구호 텐트들이 늘어서 있다. /이하은 기자
당국 및 구호 단체들의 지원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백씨는 당국이 대피소에 방문하지 않는 주민들에게는 구호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서 "과거에는 마을에 와서 급식소를 운영하는 등 지원을 오기도 했는데, 자신들이 정한 조건을 따라야 지원을 한다는 것이 무슨 구호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전날 대피소를 방문했을 때 구호 시설이 생활하기에 충분한 준비가 안 돼 있었다며 "앞으로는 그냥 마을에서 있으려고 한다"고 했다. 현장에서 취재진과 마주친 50대 남성도 "어디서도 뭐 하나 제대로 도움 주는 것이 없다. 마을이 완전 소멸됐다"고 한탄했다.

이날 오후 구룡마을 근처 개포중학교와 구룡중학교에 마련된 대피소는 낮 시간 동안 주민들이 마을로 빠져나가며 한산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지원을 나온 직원들은 주민 현황과 구호 물품 등을 확인하고 있었고, 간간이 주민들이 오가며 구호품을 받아 가거나 상담을 신청하기도 했다. 강남구는 개포중에 29가구 39명, 구룡중에 24가구 50명, 기타 임시 숙소에 8가구 12명의 이재민들을 수용해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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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잔불 정리를 하고 있다. /이하은 기자
이날 현장 감식을 진행한 소방 당국은 화재 원인을 분석 중이다. 당국은 30일 오전 10시 2차 조사를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소방은 진화 지연에 대해 소화전의 부재를 배경으로 지목했다. 소방 관계자는 "구룡마을이 행정적으로 기반 시설을 설치할 수 없는 상태다 보니 상수도 배관이 없고, 소화전을 설치가 근본적으로 어렵다"며 "화재 진압을 위해서는 결국 물이 있어야 하고 소화전을 연결해야 하는데, 이게 없다 보니 용수 부족으로 지연이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용할 자원이 충분했다면 더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전했다.

한편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지난 27일 오후 3시49분께 구룡마을 2지구에서 시작돼 강풍을 타고 1·3·7 지구와 구룡산 일부에까지 번졌다. 소방은 대응 2단계를 발령해 진화에 나섰지만, 강한 바람과 용수 부족 등으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화재는 발생 12시간 49분 만인 이날 오전 4시39분께 완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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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 현장에 불탄 집기와 차량, 가구들이 나동그라져 있다. /이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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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 현장에 불탄 집터가 남아 있다. /이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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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 현장에 불탄 집기와 차량, 가구들이 나동그라져 있다. /이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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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이 전날 화재로 잿더미로 변해 있다. /이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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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 현장 통제선 안쪽으로 불탄 집기와 차량, 가구들이 나동그라져 있다. /이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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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 마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화재민 급식소가 열려 있다. /이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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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 현장에 경찰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하은 기자
이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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