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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 노동계를 대표하는 위원을 포함하자는 내용의 법안이 여당에서 발의됐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한은 총재 추천 몫 위원 대신 노동계 추천 위원을 금통위에 포함하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전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서 "금통위의 현재 인적 구성은 서민을 포함한 노동계층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도록 돼 있다"면서 "금리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노동계층의 이해관계와 의사를 전달할 위원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사실상 '노동계와 서민 몫'의 금통위원을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한은 금통위 임무와 실제 작동방식을 크게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한은 금통위를 비롯해 미국 연방준비제도, 영란은행 등 그 어느 나라의 통화정책 결정기구도 정부, 기업, 농민, 노동자, 금융업자 등 각 직역의 이해를 대표하는 이들로 구성되지 않는다.
통화정책 결정기구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특정 직역이나 이해집단으로부터의 독립성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모욕에 가까운 공격을 받으면서도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이 꿋꿋이 버티는 것도 연준 독립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특정 집단이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에 가장 적절한 금리와 통화량을 결정하는 게 중앙은행의 모토다.
다음으로 중요한 가치는 전문성이다. 금통위는 통화정책을 중심으로 거시경제 전반에 가장 해박하고 경륜 있는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금리 방향을 결정하는 조직이다. 개인적 주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냉정한' 통계와 시장 데이터를 기초로 숙의를 해 집단지성을 발휘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금통위원 7인 가운데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추천하는 위원이 있다. 그렇지만 이들도 실제는 정부에서 추천하는 거시경제 학자나 전문가들이다. 금통위 의사록 어디를 살펴봐도 이들이 기업이나 금융계를 대변한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한은 금통위에 '노동 몫'위원을 넣자는 주장은 민주당 내에서 제법 역사가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6월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주당 소속 의원 모임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서 금통위 구성을 개편해 '계급적인 정책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동자, 자영업자, 청년 등을 대변하는 위원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전 의원 발의 법안에서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결국 제도권 노조 활동가를 금통위 위원에 추가하자는 안이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 정부 입김을 줄이는 쪽으로 금통위 제도를 손봐야 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노동계 몫' 금통위원을 넣자는 주장은 경제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통화정책의 신뢰를 허무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 법안이 중앙은행 중립성 강화는커녕 중앙은행의 정치화를 심화하는 조치라는 걸 여당은 반드시 인식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