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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긴급 아닌데 예비비? 의회는 거수기인가...양산시 예산 폭주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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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기자

승인 : 2026. 03. 24. 09:07

이철우 기자 (2)
전국부 이철우 기자
경남 양산시의 예산 파동은 더 이상 '논란' 수준이 아니다. 이쯤 되면 노골적인 원칙 훼손이자, 지방재정 시스템을 가볍게 여긴 결과라고 봐야 한다. 행정의 편의가 법과 절차 위에 올라서는 순간,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더불어민주당 임정섭 시의원 예비후보가 꺼내 든 '재정 민주주의 파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오히려 상황을 점잖게 표현한 수준에 가깝다.

예비비는 아무 때나 꺼내 쓰라고 존재하는 돈이 아니다. 재난과 같은 긴급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그럼에도 일반 사업을 위해 이를 끌어다 썼다면, 이는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니라 제도를 의도적으로 비틀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묻지 않을 수 없다. 물금역 공영주차장과 주민편익시설 재단장이 과연 '긴급 재난 대응'에 해당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굳이 예비비라는 우회로를 택했는가. 절차를 건너뛰기 위한 편법이 아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한다면, 이번 예산 처리는 정당성을 주장할 자격조차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의회를 대하는 태도다. 예산 심의는 형식이 아니라 권력 견제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충분한 설명과 합의 없이 수정안을 밀어붙였다면, 이는 의회를 협의 대상이 아닌 '통과 버튼' 정도로 취급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들이 '거수기'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벌어진 일은 견제와 균형의 붕괴 그 자체다.

여기에 나동연 시장의 본회의장 이탈까지 겹쳤다. 시정질문 도중 자리를 뜬 행위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의회에 대한 무시이자, 시민에 대한 무례다. 공직자가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서 등을 돌린 장면은 어떤 해명으로도 가볍게 덮을 수 없다.

선거를 앞둔 정치 공방이라고 치부하기엔 사안이 지나치게 중대하다. 지금 문제의 본질은 정치가 아니라 원칙이다. 법이 정한 예산 운용 기준을 지켰는가, 의회의 권한을 존중했는가. 이 두 가지에서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이미 선을 넘은 것이다.

행정이 스스로 정한 규칙을 무너뜨리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통제 불능이다. 예비비가 '편의비'로 전락하는 순간, 어떤 예산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그 피해는 결국 시민 몫이다.

지금 양산시 집행부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변명이 아니라 인정, 방어가 아니라 사과다. 그리고 책임이다. 그마저 외면한다면, 이번 사태는 단순한 예산 논란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뢰 붕괴'라는 더 큰 대가로 돌아올 것이다.
이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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