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취소거래설 진위야 어떻든 서사는 남는다
간단 명료한 설명 갈망하는 대중에 호응하는 현대 정치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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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경기가 급격히 악화돼 실업률이 역대급으로 치솟고 경제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자. '수만명 실직자 쏟아져' '10인 미만 소상공인 업체 폐업률, 지난해 동기 대비 두 배'. 언론의 건조한 통계(비극) 제목보다는 '당장 분윳값 없어 눈물짓는 젊은 가장'이라는 미시적 사례(서사)에 대중은 즉각 반응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분노와 슬픔, 공감의 영역에서 먼저 감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묘사하는 기법을 내러티브 저널리즘이라고 한다. 언론 서사 구조 즉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몰입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보도 방식을 말한다. 언론과 대중의 사이를 좁히고, 이야기가 갖는 공감의 힘이 커, 설득 효과가 높다. 특히 탐사 보도나 이른바 PD저널리즘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나타냈다. 유튜브 등 SNS의 전달방식은 이게 주류다. 객관적 사실만으로는 관심 끌기나 흥미 유발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이야기에 끌리고 심지어 열광하기까지 하는가. 간단명료한 인과관계가 그 이유다. 세상만사는 복잡하고 현안은 일관되게 흐르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간단한 설명과 명료한 배경을 원한다. 복잡하게 설명하면 외면한다. 서사 구조는 이것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매력이 있다. 그러면 모든 일이 명쾌하게 해명된다. 매력을 넘어 마력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그렇게 됐구나. 끝."
하나의 원인과 결과가 깔끔히 이어진다. 그 결과는 또 다른 관련 현안이나 그 사고 체계 안에 형성되는 관점에 대해 최초 원인으로 작동하게 된다. 구태여 머리 쓰고 힘들여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일종의 당의정 기능이 있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 중심의 보도와 논평은 객관성 결여나 사실 왜곡, 선정주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내러티브 이동 이론이란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 때 반박이나 분석 등 비판적 사고 기능이 일시 정지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언론이 '이건 이런 거야'라고 가르치려는 형식이 아니라 흥미로운 일화나 극단적 사례를 먼저 제시하면, 정보 수용자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듯한 과정을 밟게 한다는 것이다. 전달자가 의도한 프레임이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효과로 이어진다.
'팩트는 됐고, 스토리를 가져와.' 개인과 사회가 이야기에 과도하게 몰입하면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음모론에 빠져들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2016년 12월 미국에서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른바 '피자게이트'. 28살 청년이 워싱턴 D.C.의 코밋 핑퐁이란 피자가게에서 반자동소총을 난사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이 사건으로 징역 4년형을 받는다). 사건의 발단은 당시 힐러리 클린턴 대선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인 존 포데스타의 이메일이 해킹돼 유출된 것이다. SNS에서는 내용 중에 이상하리만치 '피자'(소아성애자들이 소녀를 지칭한다고 주장)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다고 지적하면서, 힐러리와 민주당 고위 참모 등이 연관돼서 아이들을 납치해 가게 지하실에서 성적 학대를 한다는 것이었다. 큐어넌 등 극우 음모론자들이 비밀모임, 악마숭배 의식 등 의혹 제기 범위를 점점 넓혔다. 범인은 아이들을 구하고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 습격한 것이다. 가게에는 지하실조차 없었다.
구속으로 사건이 끝났나. 아니다. 지난 2월 26일 힐러리 전 장관은 성범죄자 엡스타인 사건과 관련해 미 하원 비공개 청문회에 섰다. 이 자리에서 몇몇 의원들로부터 공식적으로 피자게이트 관련 '기괴한 질문들'을 받았다고 공개했다. 사건 10년 뒤다. 2020년 미 대선에서도 피자게이트는 틱톡 등 SNS를 중심으로 또 불거져 언론 기사로 다뤄졌다.
영향력 있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중단된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 건에 대해 청와대와 검찰 간 공소취소거래설이 제기됐다. 제시된 근거는 없고 전언만 있다.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도 진전된 팩트는 전혀 없다. 그런데 서사는 남는다. 여권 내부에선 대통령의 강력한 공소취소 요구가 있었고, 또한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 등 여론의 강력한 요구도 있었다.
객관적 물증(녹취, 문서, 신뢰도 있는 증언 등)이 없음에도 내밀한 정치권 내 최대의 '현실적 욕망'을 교환 조건으로 묶어냄으로써 음모론적 스토리를 갈망하는 대중을 강하게 자극했다. 충돌하는 두 개의 동기를 나란히 배치하는 순간 대중은 '그렇게들 절실히 원하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데 거래가 충분히 있을 수 있겠네'라는 서사적 환상에 빠지고, 이는 곧 건강한 개개인의 합리적 의심으로 치환된다. 동기는 증거의 지위로 격상한다.
우연의 일치라고 믿고 싶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어느 빅 스피커는 자기 정치 진영의 ABC론을 내세웠고, SNS에서는 누가 A에, B에, C에 속하는지 아주 활발한 논의가 펼쳐지고 있다.
이제 거래설의 진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현실의 결말이 어떻게 나든, 팩트가 어떻게 굴러가든 이야기는 남고 해석은 꼬리를 문다. 이래도 저래도 관련 유튜버나 유튜브는 막후의 흐름을 꿰뚫고 있다는 이미지로 자체 권력 및 영향력 강화 효과를 얻는다. 남들은 팩트를 숨기지만 우리는 서사를 통해 거대한 진실을 보여준다는 프레임은 완성된다.
기술의 발달과 이야기를 갈망하는 대중, 이에 호응하는 현대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단면이다. 바야흐로 우리도 딥 스테이트를 갖는 '선진국'이 돼 가는가.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명호(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