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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정권 교체 이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자동차 산업에 대한 국가적 정체성과 방향성은 여전히 모호하다. 한쪽에서는 BYD와 상하이산 테슬라 등 중국산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을 환영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내 산업 보호를 외친다. 최근에는 일부 국회의원이 "중국산 테슬라에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며 주무부처 장관에게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우리 진영의 의원이 점령군에게 박수를 보내는 모양새다. 미국과 유럽이 자국 산업을 지키기 위해 관세 장벽을 세우는 시점에, 우리는 오히려 외국 정부의 보조금으로 무장한 차량에 우리 세금을 얹어 주자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는 것이다.
자동차 산업은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다. 반도체나 전력 산업과 비교해도 10배 이상의 고용 창출 효과를 지닌 국가 기간산업이다. 완성차 업체 한 곳 뒤에는 1차, 2차, 3차 협력사가 수천 개씩 줄지어 있고, 정비·물류·유통·금융·보험·중고차 시장까지 합치면 수백만 명의 생계가 걸려 있다. 자동차 한 대의 가격에는 한 나라의 산업 생태계가 통째로 담겨 있다는 뜻이다. 완성차가 무너지면 부품사가 무너지고, 부품사가 무너지면 지역 경제가 무너진다. 울산·창원·아산·광주의 도시 운명이 곧 한국 자동차 산업의 운명이다.
지금 한국 시장에 상륙하는 중국산 차량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이들은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정책 지원, 그리고 환경·인권 기준이 느슨한 광물 공급망에 기대어 인위적 원가 경쟁력을 확보한 제품이다. 중국 내수 시장의 극심한 불황과 과잉 공급으로 살길을 찾아 해외로 쏟아져 나오는, 말 그대로 '필사의 탈출'이다. 중국 내에서만 100개가 넘는 전기차 브랜드가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향후 2년 안에 중국 제조사들의 대규모 구조조정과 도산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의 비정상적 덤핑 경쟁이 정리되고 나면 시장은 다시 정상적인 경쟁의 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문제는 그 정상화의 시점까지 한국 산업이 버틸 수 있느냐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지가 넓어지고 가격이 낮아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 단기적 편익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함께 인식해야 한다. 국내 완성차와 부품사가 가격 경쟁에서 밀려 무너지고 나면, 그다음 오는 것은 독점 시장에서의 가격 상승, A/S 부실, 그리고 일자리 붕괴다. 한 번 무너진 부품 생태계는 결코 단기간에 복원되지 않는다. 호주가 자국 자동차 산업을 잃고 어떤 처지가 되었는지, 영국이 어떻게 외국 자본의 조립기지로 전락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소한 소비자에게는 이 진실이 정확히 알려져야 한다.
주가가 오른다고 좋아할 상황이 아니다. 단기 수출 실적과 환율 효과에 가려진 구조적 위협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좌표 인식과 국가적 방향 설정이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보조금 정책, 인증 기준, 부품 국산화율, 배터리 공급망 전략,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일관된 산업 정책 속에서 재설계돼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는 매 순간이, 우리 산업의 기반을 침식하는 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