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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은행 영업점에서 근무하던 시절, 지점장은 제게 늘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강조했습니다. 고객이 맡긴 돈을 셀 때는 반드시 지폐 계수기에 넣은 뒤 손으로 한번 더 세라고 조언했습니다. 유독 돈을 느리게 세던 저는 돈 세는 법을 익히는 데만 몇 달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기계가 있는데 왜 사람이 또 세야 하는지, 구시대적인 방식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사고가 났습니다. 지폐 계수기 사이에 돈이 끼면서 권종이 잘못 분류됐고, 결국 오입금을 했습니다. 평소 지점을 자주 찾던 단골 고객은 다행히 너그럽게 이해해줬습니다.
그날 이후 기계로 돈을 세어도 다시 셌습니다. 전산에 찍힌 숫자도 눈으로 한번 더 확인했습니다. 영업점 마감 때 보유 현금을 정산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동화기기에 표시된 숫자와 실제 현금을 맞춰보고, 자기앞수표 같은 중요용지도 하나씩 대조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비효율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금융에서 그 비효율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번 더 확인하는 것은 한번 더 고객을 생각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카카오페이증권에서는 잘못된 안내로 반대매매가 발생했습니다. 콜센터 직원이 계좌의 담보유지비율이 140%인데 120%로 잘못 안내한 것입니다. 회사는 실제 매도 가격이 당시 시가보다 높았다는 입장이지만, 고객에게 중요한 정보를 잘못 전달했다는 사실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토스뱅크에서도 앞서 엔화 환전 과정에서 잘못된 환율이 적용되면서 276억원 규모의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토스증권은 최근 미국 주식 옵션 계좌 개설 과정에서 기초 교육 영상을 이용자가 화면에서 숨긴 채 재생할 수 있도록 하면서 투자자 보호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토스·카카오 등 빅테크 계열 금융사에서는 유독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상반기 은행권 민원 총 1295건 중 토스와 카카오에서만 각각 694건, 181건이 발생했습니다. 빠르게 서비스를 내놓고 고객의 이용 편의를 높이는 것만큼, 그 과정에서 한번 더 확인하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따져볼 때입니다.
빅테크 계열 금융사에서 고객과 금융사의 물리적 거리를 없애면서 앱 하나로 계좌를 만들고, 환전하고, 주식을 사고팔 수 있게 됐습니다. 굳이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를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거리를 없앤다고 해서 고객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중은행에서는 IT 부서 직원들도 입행 이후 일정 기간 영업점 근무를 경험합니다. 금융 서비스는 결국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업점에서는 고객을 직접 만납니다. 같은 질문을 몇 번씩 하는 고객을 보고, 돈을 건네기 전에 다시 확인하는 모습을 봅니다. 창구 앞에서 망설이는 표정도 볼 수 있습니다. 고객이 맡긴 돈을 직접 세면서 그 돈이 누군가에게는 한 달 생활비이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모은 돈일 수 있다는 사실도 체감하게 됩니다.
비대면 금융은 금융의 문턱을 크게 낮췄습니다. 누구나 빠르고 편하게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문턱을 낮추는 것과 기준을 낮추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금융이 디지털화될수록 사람이 한번 더 확인하는 '비효율'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고객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빠른 금융사가 아닙니다. 내 돈을 맡겨도 이 회사는 한번 더 확인해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신뢰는 쌓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무너지는 데는 한순간입니다. 그리고 고객은 신뢰를 잃은 금융사를 다시 찾지 않습니다.










